흑인들의 한이 서려있는 블랙 뮤직의 역사와 종류(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뮤직)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트는 흑인들이 한과 외침이 담긴 블랙 뮤직의 역사와 종류에 대해 알아봅니다. 대표적인 블랙 뮤직의 종류로는 블루스를 비롯하여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뮤직이 있으며 이에 대해 간략히 알아볼게요.

 

블랙 뮤직의 대표, 블루스 

블루스는 인간의 슬프고 원초적인 한이 담긴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메리카 흑인들만이 알고 있는 독특한 검은 한이 블루스 속에 배어 있습니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부 목화 농장의 노예로 팔려와 자유를 박탈당한 채 힘든 노동을 하던 흑인들의 고통과 자유의 외침이 담긴 장르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두 하역 일꾼들의 슬픈 노래, 들에서 외치는 필드 할러, 슬픈 흑인 영가가 모체입니다. 다만 블루스는 흑인 영가와 달리 조금 더 세속적이며 집단의 공통적이고 일반화 된 감정을 담았습니다.

블루스는 1800년대 후반 이후 음악적인 체계를 이루기 시작했는데요. 남북 전쟁이 끝나고 노예 해방이 이루어진 후 1880년대부터 블루스는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가지면서 구체화 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1920년대 이후 레코드 등을 통해 블루스라는 정식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블루스의 기원은 아메리카로 건너온 흑인들이었죠. 백인들은 농장에서 흑인들을 혹사시키며 작업 능률이 떨어지면 안된다는 이유로 노동 중 대화까지 금지시켰는데요. 흑인들은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외침(Holler)로 간단한 의사 표시를 했다고 하는데요. 블루스의 저변에 깔린 요소 중 하나인 필드 할러는 그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 탄생된 것이죠.

흑인들이 자유가 보장된 시간은 일주일에 딱 한 번, 교회에 가는 시간이었는데요. 그 시간만큼은 마음대로 말하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목 높여 부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블루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흑인 영가, 가스펠이 시작된 것이죠.

초기 블루스는 단순한 음악이었어요. 초기 블루스는 컨트리 블루스 또는 델타 블루스라고 불리웠고 미시시피 델타 지역을 중심으로 루이지애나, 앨라베마, 조지아, 텍사스에 이르는 남부 지역의 목화밭에서 일하던 흑인들에 의해 얻어진 이름이죠. 한편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간 흑인들에 의해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 불리워진 블루스를 어번 블루스라고 불러요.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흑인들은 미국에서 여전히 가난과 멸시, 차별을 당해야 했는데요. 무엇보다 흑인들은 빼앗기고 유린당한 패배자란 감정을 지울 수 없었고 이런 비통한 감정을 다스피기 위해 자신들의 노래인 블루스를 불렀어요. 블루스는 아프리카 민속 음악과 유럽의 음악이 뒤섞여 흑인 특유의 특성과 감정으로 표현이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아무리 즐거운 노래를 불러도 슬프게 들렸고 가슴 아픈 노래는 더욱 구슬프게 들렸어요.

미국 국가보다 더 유명하다는 노래 St. Louis Blues를 작곡한 블루스의 아버지 윌리엄 C. 핸디는 1873년 11월 16일 앨라배마주의 플로랜스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감리교 목사로 찬송가 외 음악은 영혼을 좀먹는닫고 믿었지만, 아들인 윌리엄 C. 핸디는 블루스 등 대중음악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4중주단을 만들어 연주했어요. 대표적인 작품인 Memphis Blues와 술 취한 여성의 푸념이 섞인 노래에 영감을 얻어 만든 St. Louis Blues가 유명해요. 그 이후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으며 그의 생애를 다룬 킹 콜 주연의 St. Louis Blues 영화가 제작된 1958년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어요.

클래식 블루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레이스 레코드인데요. 1920년대 흑인 구매자를 겨냥해서 만든 레코드를 말해요. 이를 이끈 가수는 마미 스미스인데요. 그녀는 평범한 팝 뮤지션이었지만 Crazy Blues가 흥행하면서 여성 블루스의 대중화를 이끌었어요. 이 당시 마미 스미스 뒤를 이어 마 레이니, 베시 스미스,  시피드 월러스, 매이 바네스 등이 있어요.

어번 블루스는 1차 세계대전 후 남부 흑인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도시의 골목에서 하모니카와 기타만으로 연주하던 블루스가 시작인데요. 1928년 인디애나폴리스의 피아노 연주자 리로이 카가 애조띤이 How Long How Long Blues를 히트시켰고 컨트리 블루스와 다른 안정과 세련미가 있는 시티 블루스를 만들었어요. 1929년 대공황 이후부터 침체기였던 레코드 산업은 1934년 다시 회복하게 되었는데요. 피아노와 기타 편성이었던 시티 블루스가 점점 편성을 늘려 밴드화 되었어요. 템퍼 레드, 빅 빌 브룬지, 피티 화이트스트로, 로니 존슨, 소니보이 윌리엄슨 등이 세인트루이스나 시카고를 중심으로 세려된 도시 블루스를 들려주었어요.

시카고 블루스는 일반적으로 전기 기타, 베이스, 드럼, 하모니카, 피아노 등으로 연주하는 남부색 짙은 블루스입니다. 우울하고 슬픈 이미지의 블루스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기 기타를 사용하는 대도시 흑인들에 의해서 연주되는 도시형 블루스인 어번 블루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시카고의 머디 워터스, 텍사스의 T본 워커, 루이 조던 등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죠.

 

리듬 앤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는 블루스 음악에 전기적인 증폭 사운드가 도입되고 더욱 흥겨운 리듬 비트가 가미된 음악을 말하는데요. 대체적으로 우울했던 초기 블루스 이후 여성 블루스 싱어들이 출현하면서 블루스 음악은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요. 아이다 콕스, 빅토리아 스피비 등의 여성 싱어에 의해 도시적인 블루스가 여러 가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색칠되어 퍼졌어요.

1940년대 루이 조르단은 부기우기와 흥겨운 서플 리듬 등을 이용하여 춤 추기 좋은 비트가 있는 음악으로 블루스를 변화시켜 연주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리듬 앤 블루스의 시초가 되었어요. 그래서 루이 조르단은 리듬 앤 블루스의 아버지라고 불리우죠. 이런 상황에서 가스펠과 접목되었을 때 획기적인 스타일의 리듬 앤 블루스가 나왔어요. 흥겨운 리듬과 열정적인 감각으로 인해 젊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팝 뮤직에서 핵심 장르로 부각되었죠.

리듬 앤 블루스는 대도시의 소외된 흑인 빈민가와 그들의 교회 그리고 스윙 시대의 흑인 밴드 등이 구사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어요. 여기에 녹음기술의 발달로 쉽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어요. 1950년대 리듬 앤 블루스는 쥐어짜는 듯 울부짖는 샤우트 창법과 촉촉하게 젖어드는 테너 섹소폰, 저절로 흥을 돋우는 리듬 패턴 등을 갖춘 음악이었는데요. 1950년대 들어 백인 가수들에 의해 불리워지면서 로큰롤로 발전했어요.

 

소울 뮤직 

흑인 문화 하면 소울(Soul)을 뺄 수 없죠. 소울은 어떤 한정된 음악의 장르가 아니라 흑인 음악 전체를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는데요. 한마디로 말해 흑인들의 정신 그 자체, 의식 그 자체, 흑인 문화와 예술 및 생활을 종합적으로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죠.

블루스에 생기있는 리듬을 넣은 리듬 앤 블루스는 백인 컨트리 가수들에 의해 로큰롤이라는 음악 장르로 발달했는데요. 흑인들 사이에서는 독자적인 영역을 그대로 확보해 나갔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소울이라는 흑인 음악의 대명사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제임스 브라운이 있는데요. 이 당시 제임스 브라운은 검은 미국의 정신적인 대통령이라 불릴만큼 흑인들 사이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또한 소울 뮤직의 여왕인 에리사 프랭클린도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데요. 소울의 여왕, 레이디 소울이라 불리웠던 가수인데요. 그녀는 디트로이트의 침례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형제 자매와 함께 자랐고, 성가 대원으로 노래를 했어요. 가창력이 뛰어났던 에리사 프랭클린은 가스펠 전문 가수가 되었다가 나중에 리듬 앤 블루스 가수들의 영향을 받아서 소울 가수로 변신하게 되었어요.

 

※ 자료출처 : 데코르 팝이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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